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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살아야지"가 삶의 목표가 될 때

"멋지게 살아야지"가 삶의 목표가 될 때

(본격 iCloud 사진 파묘하며, 추억팔이 시작)

어릴 때부터 난 그냥 멋있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무대에서 기깔나게 랩 차력쇼 하는 사람들, 사람들에게 말을 잘 거는 사람들… 보면 그냥 멋있었다. 그래서 난 그런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서… 스스로 맨날 “멋지게 살아야지” 하면서 다녔다. 폼 나게, 누군가에게 인상 남길 수 있게, 뭔가 재밌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한때는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나도 이 말이 내 곁을 떠나질 않았다. 진로를 정할 때도, 무슨 프로젝트 할 지 선택할 때도, 심지어 내가 힘들어할 때도 이 말은 꼭 내 곁을 맴돌았다. 지금 돌아보면, “멋지게 살아야지”는 내 삶의 한 이정표가 된 것 같다. 내 삶의 가장 중요한 구심점이었고, 그 태도를 따라가다 보니 나는… 지금의 길 위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의 시작은, 개발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원했던 건, 특이한 거… 멋있는 거…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개발자가 될 생각 같은 거? 별로 없었다. 그냥, 컴공 가면 멋져 보였고.. 다들 취업 잘 된다고 하니까 왔다. 그 시절엔 그게 다였다. ‘멋있고, 폼 나고, 돈도 좀 벌면 괜찮지 않나?’ 주변 어른들도 다.. 컴공 가서 컴퓨터 배우면 취직 잘 된다더라… 해서, 약간 보험 느낌으로 컴공 진학한 게 컸다. 그 정도의 계산으로 난 운좋게 컴공 진학을 할 수 있었고,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졸업사진
고등학교 때 서울랜드 가서 졸업사진은 저런 식으로 찍었다. 저게 진짜 멋이지;;
실화냐
근데 진짜 고3때 공부한다고 단체로 애들 모아서 머리 밀은 건 레전드긴 하네.

근데 막상 와보니까, 세상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빠르게 달려 나가고 있었다. 좀 쉬엄쉬엄 좀 하지… 애들 웰케 진도가 빠르냐.. 주변 친구들 중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코딩을 했던 친구들이 있었고, 난 생전 처음 보는 자바 앞에서 머리가 돌아버렸다. 결국 1학년 1학기 때, 자바프로그래밍 과목에서 ‘C0’를 맞았다. 그때 느꼈다. 아… 나 지금 여기서 제일 멋없는 거 아닌가..?

수업시간엔 잠을 자야죠
1학년 땐 수업만 들으면 잠을 잤다. 수업에 그리 흥미가 있질 않아서.. (그걸 찍어준 친구도 대단하네요)
윽 코딩 싫어
C언어만 보면 발작?을 일으키던 시절이 있었는데.. "으 코딩 싫어" 하던 시절..

그래서 다른 길을 찾았다. 찾고 보니.. 옛날부터 좋아했던 음악이 있었다. 음악… 직접 한 번 해봐야지? 하면서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진짜 실천할 때였다. 학교 힙합동아리, 워너패밀리 들어가서 형들이랑 작업실 잡고, 큐베이스랑 Logic Pro로 녹음하고, 밤새 믹싱하면서 공연 뛰고… 무대에서 마이크 잡고 랩 뱉을 때마다 이상하게 살 것 같았다.

fl스튜디오 재밌다
친구가 내 노트북에 깔아줬던 FL 스튜디오, 한동안 재밌게 썼던 추억이 있었는데.. (지금은 맥으로 바꾼 다음 Logic Pro를 애용 중이다)
아 공연하고 싶다
대학교 1학년 때, 친구들이 인스타로 내가 랩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 신기하다면서 만나면 맨날 랩해달라고 해댔다. 그리고 난 그걸 꼬박꼬박 해줬다... (공원에서 저러고 있는거 참 대단하네요🤗)

그때는 코드를 짜는 대신 가사를 짰다. 디버깅 대신 믹싱을 했다. 내가 만든 작업물을 공연에서 보여줄 때마다.. “이게 진짜 멋있는 거지” 하고 있었다.

그때의 ‘멋지게 살아야지’는 음악 안에 있었다. 나만의 방식은… 그땐 그거였다.

나름 음악팀장도 했었죠
전직 음악팀장님께 급히 인수인계서를 받고 집에서 인수인계서 읽는 사진도 있네. 이것도 중요하다고 찍어둔 건가.. 추억이다 진짜
쇼미11 지원
쇼미더머니11 지원영상 찍겠다고 작업실에서 조명 틀어놓고 지원영상 찍었던 적도 있었네. 지금 돌이켜보니, 나 나름.. 음악 열심히 했었구나🙃

돌이켜보면, 그 때의 나는 단지.. ‘잘 나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멋있다고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찾고 있던 것 같다. 그게 그때는 음악이었고, 그게 내가 처음으로 무언가에 진심으로 “디깅”하는 첫 순간이었다. 누군가 강제하지 않아도, 내가 진짜 하고 싶어서… 그렇게 빠져 들었으니까.

음악 진짜 좋아하긴 했지
코로나 때 공연 못해서 한이 됐었나 보다. 군대 전역 하자마자 학교에서 '일상맞이주간' 축제를 한다고 했을 때, 바로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역 하자마자 공연하고 싶다라고 무책임하게 얘기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것을 흔쾌히 받아주고, 군대 컨셉으로 전역하고 일주일만에 공연 무대에 섰다. 이 무대는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남는.. 정말 재밌게 했던 무대 중 하나다. (비눗방울 뿌리고.. 군대 상황극 하고.. 아주 여러모로 나름? 고민 많이 했던 무대였다😳🥹)
리듬게임 하는 것 같았거든
점점 음악을 하면서, 나는 내가 왜 음악을, 특히 '랩'을 좋아하는 지 이해하게 되었다. 난 내가 쓴 가사로 사람들에게 내 솔직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리고 그것에 사람들이 호응하고 서로가 소통하며 쾌감을 느꼈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에는 정말 여러가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가장 신경 썼던 것은 무대 연출과 랩에서 가장 중요한 '라임'과 '플로우'였던 것 같다. 특히, 이 가사를 비트에 나오는 리듬에 맞춰 조리있게 올려 놓아 맛있는 '플로우'를 완성하는 것은, 리듬게임에서 '퍼펙트 게임'으로 클리어 하는 것마냥.. 너무 재밌었다.



사람들 가르치는 것도 재밌네? 교직이수 레츠고

그러다 또 다른 형태의 ‘멋있는 거’를 찾게 됐다. 그건 바로.. 내가 은근히 사람들 가르치는 것에 관심이 있었고, 그게 정말 스스로.. 멋있어 보였다. 공과대학 학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교직이수’를 신청할 수 있던 컴공이었기에, 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2학년 때 무언가에 홀리듯 교직이수를 신청하게 됐다.

교직이수를 신청하고, 사범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교육심리, 수업 설계.. 이런 거 들으면서 사범대의 다양한 학생들과 토론을 자주 했었다. 분명히 난 공대생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런 게 재밌었다. “사람을 이해시키는 방법을 이론적으로 배운다”는 게 뭔가 신선했고.. 괜히 멋져 보였다. 이 시기엔, 이게 정말 내 길인 줄 알았다.

사범대 수업 재밌어요
고학년이어서 그랬는 지는 몰라도.. 사범대 수업 가서 교육학 수업들을 수강할 때마다 흥미로운 점들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교육공학', '교육심리'와 같이 사람들을 더 잘 가르치는 방법론적인 내용들을 배웠을 땐, 내게 정말 도움 많이 되었던 내용들이었다. 실제로 여기서 배웠던 '가네의 9가지 수업사태'등의 내용은 내가 교생실습을 나가서, 또는 누군가를 가르칠 때 종종 차용해서 쓰는 방법론이 되었다.
선생님이 저러고 살아서 죄송합니다
내가 가르칠 때, 듣는 사람은 무조건 재밌게 느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떻게 설명해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을지 정말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다. 우선 내게 집중하도록 만들기 위해, 이 사진처럼.. 저렇게 이목을 끄는 것부터, 온몸을 던져 노력하는 편이라고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교생실습을 나가보니까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이보다 더 훨씬 깊은 일이었다. 아이 한 명 한 명의 삶에 관심을 갖고, 그 마음을 품는 일. 내가 교생실습을 하던 시절에, 내가 맡았던 반의 담당 담임선생님이 계셨는데, 그 선생님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셔서.. 아이들과 수업 끝나면 같이 잠실로 야구도 보러 가고.. 밥도 같이 먹고 이러셨다. 이런 건 돌이켜 보면, 내 궁극적인 성향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학생을 ‘사랑’하기 까지는 잘 모르겠다. 난 그런 것보다, 지식을 ‘재치 있게 전달’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걸 깨닫고 나서부터,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조금 명확해 진 것 같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해서, ‘아, 진짜 이해해 버림’이라는 반응을 듣는 것’ 이걸 좋아했던 거다. 무대에서 랩을 뱉을 때 느끼던 그 쾌감이랑… 왠지 비슷했다. 결국 ‘가르침’도 내게 또 하나의 ‘공연 (==퍼포먼스)’였던 거다.

그래도 학생들 놀아주는 건 못참지
'가르침'도 내게 또 하나의 '공연'이었다고 해서.. 진짜 고등학교 가서 학생들, 선생님들 앞에서 진짜 공연하고 온 교생이 있다? 네, 그게 바로 저입니다. 정신 차리겠습니다😂 (공연 영상 궁금하시다고요? 개인 연락 주시면 생각해 볼게요)
연구수업도 했어요
교생선생님들 대표로 학교 현직 선생님들 앞에서 연구수업도 했다. "이전에 비해서 정말 많이 발전하신 것 같다.."라는 정보교과 담당 선생님 말씀을 듣고 뿌듯했던 기억이 있네요... 네, 많이 떨리긴 했지만 제 스타일대로 일단 수업하긴 했습니다 :)



졸업작품 “밥상머리” - 프론트엔드도 재밌네요?

졸업작품 팀을 짜야 했다. 이미 내 친구들은 졸업작품 팀을 짜서, 미리 지도교수님들께 연락을 드릴까 말까.. 하고 있던 애들도 있었고, “아 그래도 학교 생활은 잘 마무리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막무가내?로 에브리타임에 졸업작품 팀원 모집 공고를 올렸던 것 같다.

그렇게 모인 멤버들, 백엔드 1명 / AI 2명, 이렇게였다. 남은 역할은 프론트엔드. “그럼 제가 그거 할게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한 마디가 내 인생의 방향성?을 바꾼 것 같기도 하다.

React? 애들이 그거 요즘 공부한다고 듣기만 했던 단어였다. 자바스크립트? 웹 프로그래밍 수업조차 들은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Figma? 이름은 들어봤지만 써본 적은 없었다.

심지어 Notion도 익숙치 않았다.. 그게 2024년 1월의 나였다.

Figma 어렵다
난 이전까지만 해도, 앱 화면 그냥 대충 다 비슷하게 디자인 하는 거니까 쉬운 줄 알았다. 아니다.. 전 세계의 모든 UI/UX 디자이너에게 무한 리스펙을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이때 뼈저리게 느꼈다😂
React Native..
이때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포기하고 싶기도 했고.. React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React Native라니.. Expo라는 것도 처음 다뤄보고..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chatGPT와 함께했던 졸업작품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의도했던 동작들이 수행되면 짜증나다가도 갑자기 기분 좋아지고.. 지금 보면 내게 소중했던 1년 간의 즐거운 여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땐 그냥 해야 되니까 했다. 근데 이상하게, 배우면 배울수록 재밌는 거였다. 화면에 떠있는 버튼 하나 누르면 화면이 반응하고, 내가 만든 코드로 진짜 무언가가 ‘보인다’. 생각해보면 있잖아… 이건 랩이랑 비슷했다. 가사를 쓰고 녹음하고, 믹싱으로 갈고 닦으면 트랙 하나가 완성되듯…. 코드를 쓰고, 디버깅으로 갈고 닦으면 UI가 완성됐다. 그리고 그걸 사람들 앞에서 시연하고 설명하는 게, 무대에서 마이크 잡던 감정이랑 너무 닮아 있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프론트엔드가 처음이었기에 그 프로젝트는 스스로에겐 미친 듯이 힘들었지만, 운 좋게도 팀원들이 열심히 노력해 주었고.. 덕분에 전시회에서 마지막에 상도 받고 너무 뿌듯했다. 끝나고 나서 딱 하나 느꼈다.

이거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보여주는 일’이이었다. 그게 음악이든 수업이든, 지금은 키보드로 코드를 치면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을 만들어 주는 걸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때부터 내 공연 무대는 무대 위에서 브라우저, 화면 위로도 확장된 것 같았다. 나는 마치 다시 무대에 선 것 같아 너무 행복했다.

발표 재밌었다
전통적인 3일간의 전시회 대신에 1분 발표 + 온라인 전시로 졸업작품 전시회를 대체한다고 했을 때 모두 당황했었다. 그러나, 난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1분 발표"라면.. 임팩트 있게 어그로(?) 끌면 그만이다! 그리고 그건 내 전문이다.. 하고 팀원들에게 발표 내게 맡겨라 했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이 전략은 유효했고, 전체 팀 중에서 학생들의 투표 결과만으로 4팀을 수상하는 '인기상'과 교수님들에게 기술적 완성도를 평가 받아 수상하는 '우수상'을 동시에 수상하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지금은 내가 바빠서 연락을 잘 못하지만, 바쁜 일만 끝나면 오랜만에 졸업작품 같이 했던 팀원들이랑 술 한잔 기울이고 싶다. 연락 자주 못하고 지내서 미안하기도 하고, 그럼에도 이렇게 다시 생각하니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졸업작품 포스터
오프라인 졸업작품 전시회를 안 한다고 해서, 열심히 만들었던 우리 포스터를 온라인에만 전시하기에 아까웠다. 그래서, 그때 같이 졸업작품 팀원을 했던 형님의 제안으로 우리 포스터를 학교 내에서 진행했던 창업 네트워킹 행사에 전시했다. 사람들이 우리 아이디어를 보고, 관심을 많이 보였는데.. 내 스스로가 기술력이 부족했어도, 어찌보면 무모할 수 있던 내 도전에서,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 붙여서 이렇게 결실을 맺은 것을 보니.. 내겐 정말 2024년이 뿌듯했던 한 해로 느껴졌다.



2025년 상반기 - 부트캠프 하면서 실력 좀 끌어 올리자

졸업작품이 끝나고 나서, 뭔가..? 미련이 남았다. ‘이제 좀 알 것 같은데.. 여기서 멈추면 아쉽다.’ 그러던 와중, UX디자인 수업 시간이었나, 매일 옆에 앉아서 같이 수업 듣던 친구가 LG유플러스랑 멀티캠퍼스에서 주최하는 “유레카 프론트엔드 부트캠프”가 있다고 해서, 운 좋게 합격 후 들어가게 됐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도 딱히 “커리어 전환” 같은 큰 그림 없었다. 그냥 좀 더 웹사이트.. 앱 같은거.. 잘 만들어 보고 싶었다. 좀 더 멋있게.

유레카는 내게 진짜 리셋이었다. React만 대충.. 알던 내가 Next.js를 배우고, 페이지 최적화, 성능 개선, 컴포넌트 재사용, 구글 애널리틱스 적용법.. 그동안 내가 감으로만 하던 것들을 다시 뜯어 고쳤다. 내 코드가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얼마나 비효율적이었는지도 그때 알았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매일 새벽까지 코드 보고, 에러 고치고, 디버깅 하고, 깃허브에서 PR 리뷰하고… 뭐 이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보면서 깨달았다.

멋지게 산다는 게, 이제는 보기 좋은 걸 만드는 게 아니구나
보기 좋은 걸,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구나

자격증도 땄다
이력서도 채울겸, 내 컴퓨터공학의 전반적인 지식도 점검할 겸.. 부트캠프 다니면서 자격증을 땄다. 그래도 컴퓨터공학 전공했는데.. SQLD랑 정보처리기사는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다행히도 2개의 시험 모두 1트에 합격했다. 부트캠프 다니면서 이렇게 시험 준비까지 하다보니 정말 힘들긴 했는데, 지금 돌아봤을 때, 그렇게 힘들게 안 따놨다면 오히려 더 후회했을 것이라 생각도 든다.
노트북 꾸미기, 주변환경 꾸미기
개발 공부를 하다 보니까, 노트북을 내 옆에 거의 맨날 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노트북 꾸미기에 더 진심이 된 것 같다. 주변 환경에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원래부터 좋아했던 카카오프렌즈 스티커랑 키링을 더욱 열정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 내 노트북이랑 가방을 보면 춘식이로 도배되어 있다. 아, 그러니까 카카오야, 정신차리고 다른 애들 굿즈도 많이 내달라고, 특히 무지 굿즈 내놔라.

‘개발자’라는 직업이 내가 막연하게.. 컴퓨터 전공하면서 “할 수도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 했었는데, 이렇게 공부하면서 나도 결국 이 직업이 어울릴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가지게 되었다. ‘멋있게 살아야지’ 원툴이었던 내가… 처음으로 ‘개발 실력으로 멋있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

열심히 살았다
수료식 때 갑자기 나보고 대면반 우수 훈련생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내가 그동안 지각 안하려고 열심히 노력한 건 맞는데.. 이렇게 상까지 받게 되다니🥹 7개월간 열심히 수업 듣고, 스스로를 갈고 닦다 보니 이렇게 좋은 결과가 있었나 보다. 기분 좋아서 수상 소감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로다가 무반주 랩을 해줬다. 영상 궁금하면 개인 연락 바랍니다 ^*^
유레카
수료식 날에 프로젝트 경진대회 결선을 했었다. 우리 팀도 운 좋게 결선에 진출해서 발표할 수 있었다. 여기서 수상을 하진 못했지만, 같이 고생해준 팀원들.. 마지막에 질의응답 시간에 답변 너무 잘해줘서 총괄 팀장으로서 너무 뿌듯했다. 그리고, 다른 팀들의 발표를 보는데 너무 잘했더라. 배울 점도 많았고, 다른 팀들의 프로젝트 결과를 지켜보며 다들 얼마나 고생했을지.. 그런 것들이 눈에 보여서 더욱 집중해서 발표를 들었던 것 같다. 다들 여기서 얻은 실력,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취뽀! 했으면 좋겠다.



기처리는 앞으로도 끝없이 문제를 처리하며 “멋지게” 살겠습니다.

방향성을 잡았으니까… 난 앞으로 프론트 개발자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취직하면, 하루의 대부분을 코드와 데일리 스크럼으로 상쾌한 아침(?)을 맞이할 거고, 그 사이사이에 음악 듣거나, 달리기 하면서 머리 식힐 거다. 지금도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요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코딩테스트를 통과해서 직접 회사 면접장에 들어가 보는 거다. 이것도 결국, 내가 ‘멋지게 살아야지’라는 말을 지키기 위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다. 이제 내게 ‘멋지게 산다’는 건 폼 잡는 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꾸준히 이어가는 거다. 음악을 취미로 절대 놓지 않고, 개발자로서 남들 앞에서 강연할 만큼의 실력을 쌓고, 꾸준히 몸을 움직이며 건강을 지키는 삶. 이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멋진 밸런스 잡힌 삶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코테 반드시 뚫는다
요즘은 코딩테스트를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침/점심/저녁 먹고 꼭 실버~골드 난이도로 1~2문제씩 푼다. 하루에 4~5문제는 꼭 푸는 셈이다. "이것이 취업을 위한 코딩테스트다" 책 1회독도 했다. 예전에는 이렇게까지 안하고 왜 코딩테스트를 준비하려 했을까 생각도 든다. 공부할수록 코딩테스트는 어렵게 느껴지지만, 어디 한 군데라도 코딩테스트 합격 연락을 받는 다면, 그것만큼 뿌듯한 것도 없을 것 같다. 할수있다 준호야.
가사 쓰기
군대 제대하기 전에 휴대폰도 없는 시간에 가사는 써야 겠다고 근무 서면서 노트에다가 가사를 적었던 것을 발견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렇게 열정적으로 움직이는 사람인데.. 낭만 넘쳤던 이 시기가 그립기도 하면서, 지금도 충분히 이렇게 열정적으로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도 든다. 어찌보면, 지금 이렇게 고생하는 것을 나중에 돌아봤을 때, "그때도 참 열정 넘쳤었지" 하면서 추억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거라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살아야지.

그동안 난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았다. 음악도, 교직도, 개발도.. 탐색하는 동안 방향을 하나로 좁히지 못했던 적도 있다. 근데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 좀 잡은 것 같다. 조급하지 않게, 나만의 페이스로, 멋지게 살아보자!

그리고 이것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 항상 “웃기지만 우습지 않게”, 유쾌하고 멋지게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악인 답게 힐링할 수 있는.. 힘낼 수 있는.. 추천곡 3곡 남기며 마무리 하겠습니다🙂‍↕️

  • 프라이머리 - 3호선 매봉역 (feat. 팔로알토, 빈지노)
  • 볼빨간사춘기 - 나의 사춘기에게
  • 유재하 - 지난날
멋지게 살아야지
무대 못끊어... 멋지게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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